밀가루 담합 6년의 대가, 공정위가 꺼낸 역대 최대 과징금 카드
생활물가의 바닥을 흔든 조용한 합의
살다 보니 물가는 늘 오르기 마련이라고 체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이번 밀가루 담합 사건은 그런 체념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보여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등 7개 제분사에 대해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겪어보니 생활필수품 가격은 숫자 하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빵, 라면, 국수, 과자처럼 매일 식탁을 거치는 제품의 원가를 건드리면 결국 부담은 소비자에게 내려온다.
이번 사건이 더 뼈아픈 이유는 단순한 일회성 실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7개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함께 조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과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까지 함께 부과했다. 시장을 스스로 교정하지 못한 기업들에 대해, 이제는 가격 구조 자체를 다시 짜게 만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왜 밀가루 담합이 더 무겁게 다뤄지는가
밀가루는 다른 공산품과 성격이 다르다. 원재료인 원맥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원가 변동이 빠르게 나타나고, 그 변동이 곧바로 제빵·제면·제과 업계로 번진다. 그래서 제분사의 가격 결정은 단순한 기업 전략이 아니라 물가 체계 전체를 흔드는 변수다. 공정위가 이 사건을 강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정위 설명에 따르면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의 87.7%를 차지하는 과점사업자였다. 2024년 기준으로도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88%에 달했다. 지나고 보니 이런 구조에서는 한두 곳의 가격 조정만으로도 경쟁 질서가 쉽게 무너진다. 특히 한 차례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 업체들이 다시 같은 방식을 택했다는 점은 더 무겁다. 같은 잘못을 반복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 신뢰를 무너뜨린다.
| 구분 | 내용 |
|---|---|
| 과징금 총액 | 6710억4500만원 |
| 관련 매출액 | 약 5조6900억원~5조8000여억원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 |
| 시장점유율 | 87.7% 또는 88% |
가격은 왜 이렇게까지 빠르게, 또 느리게 움직였나
이번 사건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원가 상승기와 하락기에서의 대응 방식이다.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원맥 시세가 오를 때는 그 상승분을 빠르게 판매가격에 반영했고,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인하를 최대한 늦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구조는 시장이 아니라 합의가 가격을 움직였다는 의심을 강하게 만든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은 총 24차례 진행됐다. 농심, 팔도, 풀무원 같은 대형 수요처를 대상으로 공급가격과 물량을 조정한 것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였다. 겉으로는 정상적인 계약처럼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가격 인상폭과 시기, 물량 배분과 공급순위까지 맞춰 움직인 셈이다. 이런 방식은 시장경쟁을 가장 교묘하게 훼손한다.
6년 동안 24차례, 그리고 55번의 회합
공정위가 확인한 회합만 총 55회다. 대표자급 회합에서 큰 틀의 합의를 만들고, 실무자급 회합에서 이를 구체화하는 구조였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담합은 대개 현장 실무자의 일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윗선이 방향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업본부장 이상 대표자급과 영업팀장 등 실무자급이 역할을 나눠 움직인 정황이 드러났다.
사실 이런 방식은 숫자보다 더 무섭다. 왜냐하면 일회적 부정이 아니라 시스템처럼 굴러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회의로 끝난 일이 아니라, 여러 차례 이어진 합의와 실행이 누적되며 시장을 잠식했다. 공정위가 이를 단순한 가격 협의가 아니라 중대한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을 회복하는 조치로서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시켰다.”
과징금만이 아니라 가격 재결정 명령까지 간 이유
이번 제재에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과징금 액수만이 아니다. 공정위는 7개 제분사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도 내렸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담합 이전 수준에 맞게 다시 산정하라는 조치다. 이 명령이 최종 확정되면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20년 만의 적용이 된다. 지나고 보니 이런 시정명령은 단순한 행정처분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되살리기 위한 강한 개입이다.
공정위는 또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보고하도록 했다. 이런 보고명령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의미가 크다. 기업이 가격을 어떻게 바꾸는지 정기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담합은 대개 조용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감시도 꾸준해야 한다.
2019년 12월 대비 2022년 9월
제분사별 판매가격 상승폭 ■■■■■■■■■■■■■■ 38%
제분사별 판매가격 상승폭 ■■■■■■■■■■■■■■■■■■■■■■■■■■■■ 74%
생활비 압박은 결국 소비자 몫으로 돌아온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기업의 가격 담합은 회계장부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밀가루를 비싸게 사는 제빵·제과·제면 업체들은 결국 제품 가격 조정 압박을 받게 된다. 그 부담은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라면 한 봉지, 빵 한 조각, 과자 한 봉지의 가격은 그렇게 조용히 올라간다.
공정위가 밝힌 것처럼 담합 기간 중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담합 시작 시점인 2019년 12월보다 제분사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상위 3개사와 하위 3개사 모두 영업이익률이 개선됐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는 시장 왜곡이 누군가의 이익이 되고, 그 비용이 소비자에게 넘어갔다는 구조를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보면 아주 단순한 공식이다. 누가 이익을 봤는지, 누가 부담했는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제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가격 담합을 더 엄격히 보겠다는 입장이다. 나 역시 이런 사안은 강하게 다뤄야 한다고 본다. 겪어보니 생활물가란 결국 가장 약한 곳부터 흔든다. 그래서 이런 담합은 적발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시장은 신뢰로 굴러가고, 신뢰를 잃은 가격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